2009년 10월 02일
로니를 찾아서 (Where is Ronny)

참으로 극장에서 관람하기 위해 노력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고 같은 배우가 나오는 반두비 때문에
두 작품을 더욱 비교해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목과는 달리 영화의 주인공은 로니가 아니라 뚜힌이다
로니는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를 차지하는 사건의 주역이지만
그 장면 이후 사라져 버리고 실제 로니를 찾아다니는 인호화 동행하는 것은 뚜힌이다
그러나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이 두 사이의 관계에는 여전한 벽이 존재한다
인호가 영화 중반 이후 뚜힌을 받아들였다 한들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근거 없는 상대적 우월감은 사라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국가대표 출신인 주인공은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에게 대련에서 KO당한 것을
참을 수 없어 하는 자존심 덩어리이기도 하지만 이는 자신이 온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삶의 수단이 단번에 사라져 버린 생계형 분노를 표출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많은 부분 전자 때문에 후자가 옅어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로니를 찾아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하는 것이 본인이 재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 믿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생계형의 표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로니를 찾아 뭔가를 수행한다고 해서 주변 환경은 조금도 달리질 것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 영화는 불법 체류자 출신의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를 꽤나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1급 요리사 자격증도 보유하고 멘사 출신이기도 한 뚜힌의 지금 모습에서는
결국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지 않은 자국 내의 상황과
3D 업종 이외에는 할 일이 없는 타국에서의 제한된 기회가 양립하고 있다
게다가 영화 초기부터 꾸준히 등장하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와 멸시는
극단적인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동네 주민들의
눈과 말과 행위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이 주변에서 평범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공감하는 내용이라는 것이 감독이 관람객들에게 다시 한 번 주고픈 메시지일 터이다
영화가 아쉬운 것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끝내 버린 마지막 부분의 미봉합이다
여러 가지 제한 사항들 때문에 제한된 인원이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것은
사전에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결론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해 버림으로써
영화의 마무리를 흐지부지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물론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에서 많은 것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원래 의도였다기 보다는 시간이나 비용 등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무리지어져 버린 느낌이 들어 버리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다
무한한 상상력의 제공이라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아 잘 활용될 수도 잘못 활용될 수도 있는데
결국 영화의 마무리를 그렇게 끝내버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정쩡하기 짝이 없는 상영 시간 역시도 결국 하고픈 걸 다 못 만들어낸 한계가 아닌가 싶어 더욱 그렇다
# by | 2009/10/02 20:00 | 영화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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