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타임을 놓쳤음에도 나다의 교차 상영 덕분에
겨우 관람할 기회를 얻었는데 영화를 못 봤다면 후회할 뻔했다
평론가들의 극찬이 아깝지 않은 정도로 절절한 연기를 보여준 아역 배우의 힘이기도 하지만
첫번째 장편이자 고향이지만 낯선 한국에서 메가폰을 잡은 작품임에도
부족하지 않는 구성을 보여준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기도 하다
여러 매체를 통해 충분히 언급되었듯 여행자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 전혀 없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사실감이 남다르다
아버지에게 버려진 채 보육원에서 주인공 진희가 저항하는 방식이 이야기의 초반을 구성한다면
중반 이후는 1차 적응과 또다른 체념과 포기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여행자는 실제로 해외 입양을 떠나는 아이들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하지만
여행을 보내준다고 새 옷을 사준 채 보육원에 맡기고 사라져 버린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본인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진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저항이지만
이를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보육원의 방식은 지나친 훈계 대신 적절한 방치이다
이같은 어른들의 태도는 특히 진희가 2번째로 절망했을 때의 대응 방식으로 상징화되는데
주변 아이들의 인형을 부수는 진희에게 보모 아줌마가 대하는 태도가 그런 행위들을 설명한다
아이들 앞에서 한 번 때린 후 따로 불러서 혼내는 것 대신 몽둥이로 이불을 때리게 하는 것이다
입양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숙희만큼 영약하지 못했던 진희가
결국 택하는 선택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무덤에 파묻는 행위로 대표된다
그 이후 진희의 태도는 아버지에 대한 희망을 완벽하게 버린 채
적극적인 입양의 기회를 찾는 형태로 돌변하지만 이에 대해 누구도 뭐라 말할 자격이 없다
누군가가 떠나갈 때마다 다같이 서서 멍한 표정으로 부르는
작별과 고향의 봄 노래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아리게 만들며
절망에 빠질 때마다 진희가 취하는 행동들은 관객들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철저하게 김새론이라는 어린 배우에 의존하여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많은 대사 없이 멍한 눈빛과 거친 행동, 가끔은 깜짝 놀랄 만큼 도발적인 발상을 온몸으로 표현한
이 어린 배우는 단 몇 번의 미소만으로도 영화를 본 관객들을 팬으로 만들어 버린다
특히나 멍하면서도 깊은 눈빛 그 자체는 감독의 탄탄한 시나리오와 맞물려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영화에서 진희에 의해 2번 불리워지는 혜은이씨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수미상관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앞뒤의 이야기를 잇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주인공 이외의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한데 잠깐씩 출연한 설경국씨나 문성근씨 이외에도
보모 역의 박명신씨와 숙희 역의 아역배우 박도연양이 특히 돋보인다
괴물 이후 부쩍 자라버린 고아성씨 역시 쉽지 않은 역할을 잘 소화해 내며
전체 영화에서 이야기의 탄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이야기가 어중간하게 끝나는 척하면서도 그 자체가 완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입양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진희가 불안한 마음으로 프랑스에 도착한 채
기다리는 양부모에게 걸어가는 모습 한가운데에서 스틸컷이 잡히고 영화는 종료되어 버리지만
그 순간이 부여해 주는 가슴아림은 그 어떤 결말보다도 강력하기 때문이다